반응형
SMALL

17살 , 헤르만헤세 존재를 알게되었다.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 책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이해하지 못했다.

 

상징이 많고, 문장은 낯설고,
결론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이 책이 어려운 게 아니라
정직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미안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옳은 편에 서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너는 정말 너로 살아본 적이 있니?”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좋은 아이로 살고 싶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본능처럼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불안하다.

그리고 그 불안은
성장통이 아니라
자기 분열에 가깝다.

 

데미안은
그 분열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한다.


빛과 어둠을 모두 통과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 닿을 수 없다고.

나는 이 문장이
참 잔인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늘
밝은 쪽만 선택하라고 배웠고,
착한 선택만이 옳다고 배웠으니까.

 

하지만 인생을 조금 살아보니
착한 선택이
항상 나를 살려주지는 않았다.

때로는
나를 가장 갉아먹는 선택이
가장 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데미안이 말하는
‘알을 깨는 일’이
용기라기보다
고통을 감수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알을 깨면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이전의 나를 잃는다.

그 상실을 감당할 수 있을 때에만
사람은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서 데미안은
위로의 책이 아니다.
각성의 책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책을 좋아하게 된 나는
아마도
이미 한 번쯤
알을 깨본 사람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여러번 읽었던 이유는, 

어둡고 거칠며 거짓이 난무하는 세계를 하나의 문을 통해서 벗어나고 

다시 안락한 나의 삶으로 돌아오는 구절에서 너무 내삶과 닮아서 

그걸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다시 안락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지 않도록 데이안을 통해서 마법을 거는 듯 읽었다. 

 

반응형
LIST

+ Recent posts